국화 향기/♡ 국화 향기는

날뫼성당(현 대구 비산성당)

감문국 2010. 5. 4. 20:59

 

 

사진으로 보는 어제와 오늘/비산성당 철길

 

"♬~기찻길 옆 오막살이 ♪ 아기 아기 잘도 잔다 ~♭♪칙 폭 칙칙 폭폭~♩"

 

1955년 한국전쟁 중 시인 '구상' 선생이 1년여간 피난생활을 했던 곳으로 유명한 서구 비산1동 비산천주교회. 모두가 깊이 잠든 새벽녘, 경부선 철길 위로 기차 한 대가 '삐이 삑' 지나가면 문풍지 흔들리는 소리에 아버지는 잠을 깼다. 옆에서 자고 있던 어머니도 잠을 설쳤다. 애들은 모두 깊은 잠에 빠져 있고. '기차길 옆에는 애들이 많다'는 속설은 이 곳에서 유래됐다(?)고 전해진다.

 

"참 많이 변했지. 철길 사이로 날뫼 큰 못, 작은 못이 있었는데 여름이면 수영하고 겨울이면 썰매를 탔거든. 당산에 올라 물렁공으로 손야구하고 나무 타고 놀았지. 언덕에 올라가야 라디오도 잘 들렸어. 기차가 들어오면 맨발로 쫓아다니고 넘어져 다치고 혼나고…"
이곳에서 태어나고 살아온 토박이 장원식(75) 할아버지는 "그때가 참 좋았지"라며 옛추억에 잠기는 듯 눈을 감았다. 엄청나게 변했다. 교회 뒤편 벌거숭이 날뫼당산에는 학교·주택·빌라가 빽빽이 들어섰다. 날뫼못은 메워져 지하차도로 변했다. 구식 기차가 시끄러운 소리로 다니던 경부선 철도에는 이제 KTX 고속열차가 시속 250km 속도로 재빠르게 달리고 있다.
일제시대부터 있었던 비산천주교회 앞으로 러일전쟁 때 만들어진 철길, 이 곳은 한국전쟁 당시 피난민의 쉼터였다. 당시에는 조랑말도 다녔다. 위쪽 지천역 인근에 살던 사람들은 밀가루를 빻기 위해 철길을 인도 삼아 교회 앞까지 걸어서 다녔다.
"가뭄이 오면 깊은 샘을 가진 성당에서 물을 길어다 썼어. 종교없는 사람들도 미숫가루, 수박, 햇감자를 신부님에게 몰래 가져다 주고 새벽녘에 물을 빼다 썼어. 살림살이는 어려웠어도 정(情)이 넘쳤지. 그립다네 그 때가." /매일신문에서

사진설명 : 1960년대 비산성당 주변(위.서구청 사진 제공)과 현재의 풍경. 당시 증기기관차가 지나갔던 철길과 KTX 고속열차가 달리는 풍경은 세월의 무게를 느끼게 한다.  1965년 그때 나도 그철로를 넘머 국민학교(인지 초등학교)를 다녔다......................!

 

 

요약
로마 가톨릭 교회 대구 대교구 소속 본당.
설립년도 1927년 11월 1일
구분 종교
소재지 대구광역시 서구 비산1동 677
규모 신자수 3,603명(1996)
본문

주보는 성 바오로이다. 비산() 즉 날뫼는 대구에서 가장 먼저 로마 가톨릭 교회 신앙이 전파된 곳으로, 1868년 서울 절두산에서 순교한 이() 루도비코 곤자가의 가정이 이미 1839년의 기해박해() 이전부터 이곳에서 거주하였다고 한다. 그리고 상주에서 살다가 1866년 병인박해() 때 체포되어 대구 관덕당에서 순교한 성 이윤일(세례명 요한)의 매부 이응칠(세례명 토마스)도 이 무렵 날뫼에 살고 있었다. 그 후 날뫼에 뿌리를 내린 신앙은 이씨 집안에 의해 꾸준히 이어져 오게 되었으며, 신앙의 자유기에 공동체가 형성되면서 1909년 대구 본당의 로베르(한국명 김보록) 신부에 의해 날뫼 공소가 설립되었다. 계산동 본당의 신자수가 증가하게 되자 본당을 분할하기로 결정한 드망주(한국명 안세화) 주교는, 1927년 11월 1일에 날뫼 공소를 본당으로 승격시키고 미알롱(한국명 맹석호) 신부를 초대 주임으로 임명하였다.

본당 신자들의 활동이 활발해지게 된 것은 이기수(세례명 야고보) 신부가 6대 주임으로 부임한 뒤부터였다. 그는 신자들의 신심과 전교 활동을 위해 1949년 4월 24일에 성모회를 설립하였으며, 이어 7대 주임 정수길(세례명 요셉) 신부는 1952년 10월 28일에 성모유치원을 설립하였다. 이후 본당 신자들은 레지오 마리애를 비롯하여 평신도 단체들을 꾸준히 설립해 나갔다. 한편 9대 주임으로 재임한 이기수 신부는 성당 신축 계획을 수립하여 1959년 1월 29일 새 성당을 완공하였다. 13대 주임 최병선(세례명 요한) 신부가 재임하던 1969년에는 황소신용협동조합이 설립되었는데, 1973년에 해체되었다가 1976년 11월 26일에 다시 비산신용협동조합으로 부활하였다. 14대 주임 이상호(세례명 베드로) 신부는 1975년 7월 21일에 수녀원을 건립하였으며, 18대 주임 이정추(세례명 바오로) 신부는1984년 7월 7일에 4층 규모의 교육관을 완공하였다. 소재지는 대구광역시 서구 비산1동 677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