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Antonin Dvorak (1841-1904)
운명, 미완성, 신세계, 비창
이것이 지명도에서 교향곡의 사대천왕(四大天王)이라 할 수 있다.
정식으로는 '드보르작 작곡 교향곡 제9번 신세계에서'이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교향곡 제5번이라고 불렸다.
2차 세계대전 후에 4곡의 교향곡이 발견되고
이것이 드보르작의 진품이라는 것이 판명되어
번호가 차례로 4개씩 밀려나게 된 것인데,
오랜 습관을 고려하여 '드보르작 작곡 교향곡 제9번 신세계에서(제5번)'따위의
타이틀이 붙은 레코드도 나와 좀 복잡하게 되었다.
베토벤은 아홉 번째 교향곡 '합창'을 완성하고
다음 열 번째 교향곡에서 스케르초의 스케치만 남긴 채 죽었다.
베토벤을 경애하던 슈베르트도 어찌된 영문인지
아홉 번째 교향곡과 함께 저 세상으로 떠나갔다.
아무래도 이 지점에서 제9번과 죽음이라는 묘한 징크스가 생겨난 듯하며,
그 점에 대단히 신경을 쓰는 작곡가도 나타났다.
실제 그 뒤 제9번을 쓰고 죽어간 작곡가가 많았고
유명한 이로는 교향곡 작곡가 브루크너가 있다.
'나도 9번을 쓰면 죽는 게 아닐까'하고 대단히 민감했던 작곡가 중에 말러가 있다.
그는 아홉 번째 교향곡이 완성되었는데도 그것을 제9번이라고 부르지 않고
'대지의 노래'라고 이름을 붙였다. 그러나 그 뒤 스스로 미신을 거부하고
다음 교향곡을 제9번이라고 명명하고 이어서 제10번 스케치에 착수했을 때
어찌된 영문인지 지병이던 심장병이 악화되어 이윽고 불귀의 객이 되고 말았다.
드보르작도 4개의 교향곡이 새로 발견되는 바람에
불운의 제9번 그룹에 추가되었지만
러시아 작곡가 쇼스타코비치가 제2차 세계대전 종결이라는 중대한 사회상황에서도
제9번을 밝고 경쾌한 소 교향곡으로 만들었던 것도
저간의 사정이 얽혀있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중후한 승리의 대 심포니를 기대했던 당시의 정부는 이 곡을 맹렬히 비난했으나,
작곡가로서는 차마 진상이 이런 것이었다고 말할 수는 없었으리라.
물론 이것은 억측에 불과하지만 어찌되었든 제9번과 죽음은
음악사상 실로 불가사의한 일이라 아니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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